통일기반구축사업
사업명
사업목적
중국 역사는 통일과 분열의 반복이며, 그 과정에는 전란이 끊이지 않았다. 전란은 인간의 삶과 정신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따라서 전란이 유발한 문학 작품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의 12-3세기는 한족(漢族)의 북송(北宋, 960—1127)과 남송(南宋, 1127-1279), 거란족(契丹族)의 요(遼, 907-1125), 여진족(女眞族)의 금(金, 1115-1234), 탕구트족(黨項族)의 대하(大夏, 1038-1227), 몽골족의 원(元, 1271-1368) 왕조의 성쇠와 흥망이 얽힌 시기이다. 이 시기에 한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은 12세기초부터 13세기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 반에 걸친 오랜 기간에 극심한 혼란과 고통을 겪었다. 이로부터 국토의 분단과 민족의 이산이 집단과 개인의 삶에 끼치는 심대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에 한족은 회하(淮河)를 경계로 남북으로 분열되었으며, 또 이민족의 왕조에서는 그들의 통치를 받았다. 한족 지식인과 관료 중 요와 금의 정복 지역에 살았거나 외교사절로 갔다가 억류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 시기에 한족과 여진족 거란족 등은 동일 민족의 분단과 이산, 다른 민족 간의 적응과 동화 등 복잡한 양상의 삶을 살았다. 이런 삶의 양상은 당시의 언어와 문학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남송 조정에서는 금나라와의 대치 상황에 대해 북방 영토를 수복하자는 주전파(主戰派)와 소강 상태를 유지하려는 주화파(主和派) 사이의 투쟁이 격렬하였으며, 이런 권력 투쟁도 문학작품에 충실히 반영되었다. 분단과 이산이라는 국가적 민족적 재난 앞에서 당파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과 그 양상을 규명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주로 한족의 개인과 집단이 창작한 시가, 소설, 희곡 작품을 대상으로 삼아 작품에 반영된 분단과 이산, 이민족 치하의 삶, 민족 간의 적응과 동화, 분단 상황 하의 권력 투쟁의 양상을 탐구하고자 한다. 이 시대 문학 작품에 대해 이런 관점의 접근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도된 적이 없다.
기대효과
이번에 본 연구를 통해 시도하려는 것은 금, 원, 남송 시기의 분단 상황을 다루고 있는 일련의 작품군들을 분단문학의 시각에서 새롭게 규정하고 해석해 보려는 것이다. 중국 내에서 본 연구를 통해 다루려는 일련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이런 관점에서 접근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예를 들면 실제 역사적 사실과의 일치 여부, 남녀의 사랑, 이민족에 대한 혐오와 비판, 우국의 정서나 망국의 한에 대한 표현 등과 같은 측면에서 다루어졌을 뿐이다. 본 연구는 전통 중국문학 작품 중에서 송과 금·원 시기의 분단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에게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의 해석이자, 나아가 한국의 분단문학의 논의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분단과 이산에 대한 불행과 고통의 양상을 보다 보편적인 시각에서 접근 해석하고, 아울러 민족의 통일과 민족 간의 융화와 치유의 가능성을 규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향후 훨씬 더 많은 작품과 작가를 논의에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고, 보다 다양한 해석의 틀과 접근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 연구는 관련 분야에 대한 영향력과 향후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업내용
1) 詩歌 : 남송과 금(金)·원(元) 시기 분단 상황을 비교적 잘 표현한 중국 시인으로는 육유(陸游, 1125-1209), 원호문(元好問, 1190-1257), 문천상(文天祥, 1236-1283), 대표원(戴表元, 1244-1310), 조맹부(趙孟頫, 1254-1322)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남방 절강성 출신의 육유는 북송 멸망 후 항주로 천도한 남송 정권이 금과 대치하며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던 비교적 초기에 활동하였다. 그가 남긴 ≪검남시고(劍南詩稿)≫ 가운데는 금의 대한 정벌과 중원의 수복을 주장하는 우국의식을 읊고 있는 시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다음으로 원호문은 북방의 통치자가 금에서 원으로 교체되던 시기에 살았다. 그는 금의 조정에서 관료를 지낸 적이 있는데, 몽고족의 침입으로 금이 멸망한 이후에는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금 왕조 시기를 대표하는 문인 중 한 사람으로, 그의 시문집인 ≪유산집(遺山集)≫에는 당시 전쟁의 참상과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시가들이 있다.
한편 문천상은 남송의 끝자락에 살며 국가의 멸망을 목도한 시인으로, 몽고군에 의해 북경으로 압송되어 결국 피살되었다. 그가 남긴 ≪문산선생전집(文山先生全集)≫의 일부 시가에서는 원에 저항하는 불굴의 기개, 망국에 대한 한과 비분의식 등을 표현하고 있다.
대표원은 문천상보다 8년 늦게 태어나 원대 초기까지 활동하였다. 남방 절강성 출신으로 그가 남긴 ≪섬원문집(剡源文集)≫에는 전란의 참상과 백성들의 고통스런 생활상을 표현하고 있는 다수의 시가가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조맹부는 대표원보다 10년 늦게 태어났고, 역시 원대 초기까지 활동하였다. 절강성 호주(湖州) 출신의 그는 송 황실의 종친이었지만 원 조정에서 관료를 지냈다. 피치 못할 상황에서 출사는 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조국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았고 악비(岳飛)를 추모하며 망국의 애통함을 시로 표현하였다. ≪송설재집(松雪齋集)≫은 그가 남긴 시문집이다. 이밖에도 금나라 통치 구역에 살았거나 그곳에 억류된 한족 문인들이 적지 않으며, 이들의 작품도 발굴하여 연구 대상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2) 소설 : 이 시기 분단과 이산을 제재로 하고 있는 소설 작품 가운데, 본 연구에서는 풍몽룡(馮夢龍, 1574-1646)의 단편소설집 ≪유세명언(喩世明言)≫, ≪경세통언(警世通言)≫, ≪성세항언(醒世恒言)≫을 대상으로 하고자 한다. 이 소설집에는 각40편씩, 총120편의 단편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금, 원, 남송 시기의 분단 상황, 전쟁과 사랑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여러 편 포함되어 있다. 단일 작품이 아닌 복수의 작품들을 통해 당시 분단의 상황이 보다 통속적인 대중들에게 어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로 전파 향유되었는지를 살필 수 있다는 것이 본 소설집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예를 들면 전란으로 인한 가족과의 이별과 만남, 전쟁 중에 꽃피운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군들이 있다. ≪유세명언≫ 제17권 〈선부랑이 전주에서 배필을 만나다(單符郎全州佳偶)〉는 전쟁 중 가족과 이별하고 기녀가 된 여주인공이 약혼자와 재회하는 이야기이다. 제24권 〈양사온이 연산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다(楊思溫燕山逢故人)〉는 금의 북방 정복 시기를 배경으로 부부의 이별과 재혼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성세항언≫ 제3권 〈기름 장수가 최고의 기녀를 차지하다(賣油郎獨占花魁)〉는 전란으로 피난을 가다 가족과 이별한 여주인공이 기녀가 되었다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부모와 재회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편 남북 분단 시기 실제 역사인물을 소설화하고 있는 작품군들도 있다. ≪유세명언(喩世明言)≫ 제22권 〈목면암에서 정호신이 원수를 갚다(木綿庵鄭虎臣報冤)〉라는 작품은 남송 멸망 시기 재상을 지낸 가사도(賈似道)에 관한 이야기이고, 제32권 〈풍도를 유람하고 호모적은 시를 읊다(遊鄷都胡母迪吟詩)〉에서는 주화파였던 진회(秦檜)와 주전파였던 악비岳飛) 등이 지옥에서 어떤 처벌을 받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성세항언≫ 제23권 〈금 해릉왕이 욕망을 쫓다 몸을 망치다(金海陵縱欲亡身)〉는 남송 정벌 전쟁을 일으켰던 금나라 해릉왕에 관한 이야기이다.
3) 희곡 : 희곡 작품에는 주로 여진족의 중원 침입으로 초래된 한족의 분단과 이산, 여진족의 금나라에 대한 한족 남송 왕조의 항쟁과 강화, 그리고 여진족과 한족 사이의 갈등과 동화의 과정이 반영되어 있다. 아래의 작품들이 이 주제에 해당한다.
잡극(雜劇)
원(元) 공문경(孔文卿), 동창사범(東窓事犯)
원(元) 관한경(關漢卿), 규원가인배월정(閨怨佳人拜月亭)
원(元) 이직부(李直夫), 편의행사호두패(便宜行事虎頭牌)
원(元) 가중명(賈仲名), 철괴리도금동옥녀(鐵柺李度金童玉女)
원(元) 손중장(孫仲章), 하남부장정감두건(河南府張鼎勘頭巾)
원(元) 왕실보(王實甫), 사승상고회여춘당(四丞相高會麗春堂)
원(元) 맹한경(孟漢卿), 장공목지감마합라(張孔目智勘魔合羅)
원(元) 무명씨(無名氏), 풍우상생화랑단(風雨像生貨郎旦)
명(明) 무명씨(無名氏), 송대장악비정충(宋大將岳飛精忠)
남희(南戲)와 전기(傳奇)
원(元) 시혜(施惠), 배월정기(拜月亭記)
명(明) 탕현조(湯顯祖), 모란정(牡丹亭)
원(元) 나라 시혜(施惠)의 전기(傳奇) 《배월정(拜月亭)》은 몽골과 금나라 사이의 전쟁, 금과 북송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족 가정의 이산과 청춘남녀의 만남을 극화하였다. 탕현조의 《모란정》도 금나라와 대치 중인 남송의 혼란한 상황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원나라 공문경(孔文卿)의 잡극 《동창사범(東窓事犯)》과 명나라 때의 《송대장악비정충(宋大將岳飛精忠)》은 남송 조정에서 주전파와 강화파의 대립에서 희생된 악비(岳飛)를 찬양하는 작품이다. 원(元) 이직부(李直夫)의 《편의행사호두패(便宜行事虎頭牌)》 등의 작품은 여진족과 한족이 혼거하는 상황과 두 민족 사이의 융합과 동화를 하나의 모티브로 삼아 당시 일반 서민들의 생활상을 극화한 작품이다. 따라서 위의 희곡작품을 분석하여 한족과 여진족의 민족의식, 분단 상황 하의 남송 조정의 권력 투쟁, 두 민족간의 갈등과 화해 등을 고찰하고자 한다.